[알은 둥지가 필요해] 🌈활동가 이야기, 상훈 편

🏡알은 둥지가 필요해😊
커뮤니티알 12주년 공간마련 프로젝트를 위한
🌈활동가 이야기, 상훈 편

<HIV에 감염되고, HIV/AIDS커뮤니티를 만들고, 세상에 공간을 제안하기 하기까지>

2010년 5월, 보건소로부터 HIV검사에서 양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군 생활을 할 때 건강검진에서 HIV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재검사를 한 후 한동안 소식이 없기에 첫 검사가 잘못 되었겠지 생각하며 주춤한 삶을 추스르고 다시 나의 삶을 살고 있을 때였다. 다시 한 번 무너진 나의 삶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었다. 나을 수 없는 불치병, 면역체계가 망가져 감기에 걸려도 회복하지 못하고 감기약을 먹으면 감기약 때문에 죽는 병이라는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에 매몰돼 삶을 포기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가족역시 HIV/AIDS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사용한 식기는 가족들이 함께 먹는 찌개냄비를 넘볼 수 없었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정보로 “일상생활로 감염되지 않아!”라고 외쳤지만 가족들에게 닿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서 ‘나’는 지워지고 ‘균 덩어리’의 삶을 살게 되었다. 결국 나는 “나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완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닥치는 대로 HIV완치방법을 찾아다녔다. HIV에 대한 치료백신, 완치사례 등 어떤 정보라도 좋으니 내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매일 HIV/AIDS에 대한 정보만 찾았다. 매일 뉴스를 검색했지만 뉴스는 희망적이지 않았다. 완치는커녕 주를 이루는 뉴스는 부정적인 내용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백신의 실패, HIV감염인의 건강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 수술거부, 치과 진료거부 등 뉴스마저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해줄 뿐이었다. 

그러다가 뉴스인터뷰를 통해 HIV/AIDS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가득 찬 HIV/AIDS혐오와 세상에 만연한 차별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내 처지가, 내 모습이, 나의 감염 여부가 이렇더라도 날 위로하고 지지하고 응원해줄 것만 같았다. 활동가들의 저항이 날 위로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용기가 생기고 어떤 것이든 날 괴롭게 하는 것들에 저항을 하고 싶어졌다. 그게 HIV로 인한 죽음이든 사회에서 겪을 차별이든 누군가 나에게 보내는 날선 혐오든. 천천히 스스로 가지고 있던 HIV/AIDS에 대한 두려움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HIV감염인 커뮤니티에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ICAAP10)>(이하 ‘아이캅’)가 부산에서 개최되는데 함께 할 감염인을 찾는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큰 용기를 내 참가를 하게 되었다.

아이캅에서의 경험은 HIV감염 1년이 채 되지 않은 나에겐 너무나도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당시 나는 만22살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HIV감염인 청소년 당사자로 참여해 청소년소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됐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캅에 참여하는 HIV감염인 청소년이 없어서 청소년소위원회가 무산될뻔했다고 했다. 대회장은 HIV감염여부가 누구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 너무나도 자유로운 분위기로 편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다. FTA가 HIV치료제 접근권을 침해한다는 국제사회의 주장을 들으며 FTA가 어떻게 작동해 치료제 접근권을 저해하는지 고민을 해보지 않은 나에게는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또 보건복지부장관에게 HIV감염인이 겪는 차별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를 왜 면담이 아닌 기습시위의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후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째서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나는 이 모든 경험들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어렸을 때부터 데모는 문제라고 교육을 받았기에 집회에 참여해본 적도 없고 부당함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가 무섭게 다가왔다. 내가 직접 시위꾼이 돼야한다는 것도 무서웠고 온 세상이 나를 감염인으로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할까봐 무서웠다. 정부와 경찰에 저항하면 잡혀갈까봐 너무나도 걱정이 돼서 계속 숨었다. 기습시위를 할 때는 피켓 뒤에 숨고 경찰이 활동가들을 행사장 밖으로 연행해 갈 때 모두가 저항하고 있었지만 행사장 안으로 숨었다. HIV감염인으로 살면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서 숨고만 있을까? 저들이 저렇게 싸우는 에너지, 용기와 대범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왜 한국에는 HIV감염인 커뮤니티만 있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단체는 없을까? 어째서 HIV활동가는 HIV감염인보다 HIV비감염인들이 더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를 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HIV감염인 청소년이 존재함으로써 청소년소위원회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HIV/AIDS이슈도 HIV감염인 당사자인 내가 스스로 좀 더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더 많은 HIV감염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드러내며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나 역시 HIV로 힘들었던 시기도 보내보고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봤다. 쉽게 HIV감염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 힘든 것임을 알고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HIV감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청소년 HIV감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을 만들게 됐다.

커뮤니티 알의 활동의 활동은 다양했다. 청소년·청년HIV감염인의 자조모임부터 HIV감염인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활동도 하고 HIV감염인의 인권침해 대응, 초기감염인의 정서지지 활동, 미등록이주민 지원, 이주민 노동자의 건강검진 문제 등 조그마한 단체에서 HIV를 둘러싼 대부분의 문제를 경험하고 함께 해결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커뮤니티 알의 활동을 해오며 HIV감염인으로 위축됐던 마음도 회복했고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더 단단해지기까지 했다. 더 많은 활동을 해보겠다는 다짐으로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상임활동을 하는 소주와 소리를 보며 활동을 하기에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면서도 HIV감염인을 위한 활동을 하는데 정작 HIV감염인 당사자들의 지원은 소극적이고 연대의 의지를 쉽게 비치지도 않아 속상한 마음이 타들어갈 대로 타들어갔다. 그럼에도 알을 응원하는 마음들이 모여 이제는 공간마련을 통해 더 나은 HIV감염인 인권침해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각자의 집에서 활동공간을 할애하고 각자의 시간을 할애해 활동을 해오는 자발적 노동착취를 멈추고 안정적인 공간에서, 안정적인 환경에서 HIV감염인 인권침해 대응활동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커뮤니티알 12주년 공간마련 프로젝트
‘알은 둥지가 필요해’

8월 24일부터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날까지 총 100일동안 소셜펀치를 통해 3500만원을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많은 관심과 공유,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소셜펀치로 후원하기: https://www.socialfunch.org/r_doong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