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모음] 연세오케이병원 국가인권위 차별진정 기자회견

연세오케이병원 국가인권위 차별진정 기자회견
발언1. 박상훈(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활동가)

국가는 HIV감염인의 건강불평등을 해결하라

대부분의 HIV감염인은 몸이 아플 때 마다 아픈 몸을 해결하기 위한 다음 스텝을 처절하게 고민합니다. 특히 HIV감염 이후 처음 몸이 아프면 이 고민을 더 치열하게 합니다. 그 고민은 바로 “내가 병원에 가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은 아픔의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도 않고 아픈 부위나 증상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HIV감염인인 내가 병원에 간다는 행위 자체가 걱정 되는 것입니다.

그 걱정이 시작되는 이유는 대부분 병원이 알게 될까봐 입니다. 병원이 알게 되면 사회에 나의 감염사실이 드러나고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을 합니다. 여기에서 더 겁을 먹은 감염인은 전산에 감염사실이 등록돼 다른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HIV감염인에게 의료차별은 굉장히 두려워하는 부분입니다. HIV로 인해서 다른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걱정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HIV감염인과 AIDS환자들은 병원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HIV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다른 환자들과 다른 색의 식판을 쓰거나 일회용 용기에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HIV감염’ 또는 ‘혈액주의’ 따위의 표시하기도 합니다. HIV감염인이라 환자복과 수술복을 모두 폐기해야한다며 추가로 돈을 더 요구하기도 하고 투석이 필요한 감염인은 투석을 해주는 병원을 전전해야하며 엄지손가락이 절단된 감염인은 13시간동안 절단된 자신의 엄지를 들고 병원을 헤매야 했습니다. 수술이 필요한 감염인은 수술실의 모든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그동안의 의료차별은 핑계가 너무나도 다양하고 교묘하여 직접적인 차별발언을 듣는 것이 의외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특수 장갑이 없어서, HIV진료를 볼 수 있는 전문의가 없어서, 코로나19 때문에, 아직까지 수술이 필요하지는 않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을 정당화하며 HIV감염인에 대한 건강불평등을 심화시켰습니다.

이번 연세 오케이 병원에서 저질러진 망언은 다양한 핑계의 가면을 쓴 혐오발언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항의를 해도 듣질 않고 표준의료지침만 준수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HIV이기 때문에, AIDS가 두려워서 혐오와 차별이 묵인되는 이 상황을 국가는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차별과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적극적이고 공정하게 해결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의료인과 예비의료인에게 올바른 HIV/AIDS교육을 진행하고 강력한 규제를 통해 의료차별이 행해지는 핑계의 언어를 막아 차별 철폐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쳐야합니다.



발언2. 이서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

의료인을 포함한 의료기관 종사자 모두는 HIV 감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꾸어 나가고, HIV에 대한 낙인과 차별로 인해 높아진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공론화된 이 사건에서 보듯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 책임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동료 의료인으로서 죄송하고 부끄럽고 유감스럽습니다. 

HIV감염은 현대의학으로 거의 정복된 상태입니다. U=U,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전파력도 없다는 원칙은 세계적인 합의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보건당국도 명시하고 있는 바입니다.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한 HIV감염인 진료 길라잡이를 보면 HIV감염인을 진료한다고 해서 특수한 장비와 절차가 필요하지 않으며 다른 모든 의료행위를 할 떄와 마찬가지의 표준주의 원칙에 따라 진료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세오케이병원에서는 “일반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HIV감염을 막기 위한 장비가 없어서” “당신이 쓰던 의료기구는 다 폐기처분 해야”하기 떄문에, “HIV감염인에게는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모두 과학으로 틀린 주장입니다. HIV감염인을 수술할 때 특수한 고도의 장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치료를 잘 받고 있는 대부분의 HIV감염인은 주사침이나 자상노출 등으로 타인에 대해 감염을 전파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85년 첫 환자가 확인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의료진 감염사례가 보고된 바가 전무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1999년 이래 의료진 감염사례 보고가 없었습니다. 과학적, 의학적 사실에만 비추어 생각했을 때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고수하는 병원측의 진의를, 저는 다음 발언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실장은 “에이즈 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면 우리 병원이 어려워진다”고 했습니다. 앞서 인용했던 원장의 발언에서도 “(산소호흡기를)일반환자가 쓰면 좋아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 병원의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병원이 의료기관으로서 바이러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혐오를 개선하는데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묵인하며 수술조차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병원측이 강력하게 권유한 수술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비단 이 의료기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공론화된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HIV감염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무지와 차별과 혐오입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 HIV감염인들은 건강상의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까지 부당한 진료거부 사례가 알려져 오고 있고, 19개국에서 이루어진 2017년 UNAIDS 낙인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은 비감염인에 비해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2.4배 더 많았습니다.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차이를 좁히는 데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차별을 증폭시키는 의료기관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질병관리청 가이드라인도 HIV 감염인들이 직접 나서 이러한 의료차별사건들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해온 투쟁의 결과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 및 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을 개발할 것을 권고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해당 의료기관이 차별을 조장하는 언행을 한 것과 부당하게 치료를 거부한 것에 대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지금이라도 전 의료진이 HIV 감염인 진료 지침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실천할 것을 약속하기를 요구합니다. 또한 인권위원회와 보건복지부는 진료지침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의료현장의 차별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중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발언3. 지오(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HIV/AIDS의 역사는 40년이 넘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HIV감염인들이 차별받아온 지도 40년이 넘었다는 얘기일 겁니다. 이미 만성질환으로 분류된지 오래이고 치료를 잘 받으면 전파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HIV감염인들은 “HIV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로 인해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번 연세오케이병원에서 그 말의 씁쓸한 현실을, 차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터운 벽인지를 또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연세오케이병원은 디스크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HIV감염을 막기 위한 장비가 없다는 것과 ‘일반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것은 이유가 아니라 차별행위 그 자체입니다. 장비는 왜 필요하고 환자들 사이에 위계세우듯 구분은 왜 필요합니까. 최소한의 감염관리원칙만 잘 지키면 될 일을 병원에서는 위험인자처럼 감염인을 대하며 치료를 거부하여 의료기관의 본분을 저버렸습니다.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함으로 인해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연세오케이병원은 부끄러워 하십시오.   

HIV/AIDS에 대한 불안과 공포, 낙인은 오래되어 왔습니다. 이는 질병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보수개신교계의 반동성애세력들은 현재까지도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에이즈가 창궐한다”라며 혐오를 부추깁니다. 혐오의 도구로만 활용되어 온 자리에서 불안과 공포가 아닌 감염인들의 인권이 이야기 될 리 만무합니다. 혐오의 말들에 가로막혀 이 사회는 질병에 대해, 그로인해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지 상상해봅니다. 아마 달랐을 겁니다. 감염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의 환자들이 질병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인식개선, 제도 마련 등에 있어 지금 보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질병을 편견과 낙인, 혐오의 대상으로 접근하려 할 때 그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밝히고 시정을 강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이 없어도 차별은 차별이고 이 사회는 차별을 없애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연세오케이병원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거기서부터가 차별을 끊어내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같은 차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이전부터 국가인권위원회에는 HIV감염인에 대한 의료차별로 인한 진정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때마다 인권위는 차별시정을 권고하였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진정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연세오케이병원과 보건복지부에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해야 하는 것은 마땅해보입니다. 차별금지법도 없는 사회에서 더는 이러한 차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권위가 책임감을 가지고 성심껏 조사에 임해주길 바랍니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개선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십시오.

발언4. 손문수(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대표)

지난 2017년과 2018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 국립재활병원의 진료거부사건 과  지역의 한 대학병원이 입원해 있던 HIV감염인에게 식판 색깔을 다르게 하고, 의료기기를 개별 지급했던 행위에 대해 차별이라고 권고한 바 있으며 2019년도에는 야간근무중 손가락이.절단된 감염인이 서울경기 10여곳의 전문병원에서 수술거부를 당해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진정중이다 .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참담한 심정이 드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병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느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뿐이다.   

HIV/AIDS 치료에 대한 의학적 발전으로 감염 사실만으로 일상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치료제를 잘 복용하고 있다면 타인에게 질병을 감염시킬 가능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돌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일반적 주의만 하면 되고, 질병관리청이 제시한 의료관련 감염 표준지침에 따르면 ‘표준주의’만 준수하면 된다. 

자신이 감염성 질환이 있는지를 모르거나 감염성 질환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에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진료거부나 차별적 행태가 두려워 자신의 감염성 질환을 문진과정에서 말하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위험한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는지 완벽하게 확인하는 것은 현재 의학기술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감염관리지침은 이 모든 경우를 고려하여 마련할 수밖에 없다.

1987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서는 어떤 환자의 검체가 HIV를 포함한 혈액 전파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모든 혈액과 특정 체액은 전염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는 보편 주의지침(universal precaution)을 제정하였다. 1996년에는 혈액 외에 체액, 땀, 눈물, 가래, 콧물 등의 신체분비물과 소변, 대변 등의 배설물, 개방성 상처부위 모두를 잠재적 오염원에 포함시켜 이에 대한 노출을 피하도록 표준 주의지침(standard precaution)을 마련하였다.

보편 주의지침 및 표준 주의지침은 환자의 병력을 모두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또한 진단받은 감염성 환자에 국한하여 특별하게 취급하려 할 경우 인권침해소지에 비해 예방상의 편익이 크지 않다. 따라서 보편 주의지침 및 표준 주의지침은 환자 구분없이 모든 환자의 혈액, 체액, 분비물, 배설물 등과의 직접적 접촉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지금까지 변함없는 감염관리원칙이다. 진료환경, 가용한 자원, 새로운 감염병의 발생 등을 고려하여 감염관리지침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면 진단받은 감염병 환자에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감염관리수준을 끌어올려야할 것이다.

2017년 10월 9일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가 대한민국을 심의한 후 발표한 최종 권고문(concluding observations)에서 “위원회는 HIV감염인에게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의료인력들에 대한 보고에 우려한다 (제12조). 위원회는 HIV감염인이 의료에 차별없이 접근하고 치료를 받음으로써 건강권을 향유하도록 보장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고 하였다. 또한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2000년에 발표한 ‘도달 가능한 가장 높은 건강 기준에 대한 일반논평(14호)’에서 차별금지 및 동등한 대우와 관련한 조항에 대한 주목을 요청하였다. 해당 조항은 HIV/AIDS를 포함해 성별, 종교, 정치적 견해, 빈곤, 장애, 성적 지향 등의 조건으로 인해서 건강할 권리를 누리는데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였고, 의료서비스나 자원에 동등하게 접근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해당 병원에서는 HIV라는이유 하나만으로 . 환자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병원의 편의적 결정은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병원은 HIV감염인에게 가장 친밀한 기관이어야한다. 그곳에선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질병정보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상태로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자신의 질병정보마저 노출되는 상황이라면 과연 병원을 편안하게 방문하고 치료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HIV/AIDS 혐오와 차별로 인해 HIV감염인들은 자신의 질병조차 말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병원마저 감염인을 구별하고 차별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감염인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