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나는 왜 HIV 감염인을 대할 때 조심스러워 지는가?

2021년의 첫번째 프로젝트알림

나는 왜 HIV 감염인을 대할 때 조심스러워 지는가?

작성: 김극렬

HIV 비감염자인 나에게 ‘에이즈’라는 질병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분명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병인데, 막상 아는 대로 말해보라고 하면 ‘잘 모른다’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병. 내 삶을 돌이켜보면 에이즈에 대해 들은 적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보건 수업의 성교육 시간에서, 굿즈를 사기위해 갔던 퀴어문화축제에서, 그리고 에이즈 관련 예술작품이나 영상에서 나는 분명히 에이즈라는 단어를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들은 만큼 병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더 나아가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병보다도 더 모르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처음 용기를 내어 커뮤니티 알에 메시지를 보낸 것은, 순전히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온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커뮤니티 알 측과 비대면 미팅을 하기로 약속한 날, 왠지 모르게 떨렸다. 내 삶의 반경에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사람을 만난다고 할 때 느끼는 묘한 감정. 나는 그것을 미팅 직전까지 느끼며 참여했다. 내 앞의 화면 속에는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포니님이 있었고, 나는 수줍게 내 소개를 했다. 미팅을 하기 전엔 대화가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걱정과 달리 대화를 시작하자 입에선 말이 술술 나왔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태도는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이상한 점은 더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단어들을 신경 쓰며 말했고, 계속 헛웃음과 눈웃음을 지으며, “제가 에이즈에 대해서 잘 몰라서요, 실례가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오조 오억 번 정도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시던 포니님은 나에게 웃어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더 실례하셔도 돼요.”

 대화를 하던 중 포니님은 나에게 비감염인들이 감염인들을 대할 때 유독 납작 엎드린 듯한 태도로 대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공감되었다.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HIV 감염인을 대할 때 조심스러워지는가?

 우선 에이즈라는 질병의 특수성이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HIV의 감염경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성관계로 인한 전파다.* 이 사실은 혐오 세력들이 감염인에게 마음대로 사회적 낙인을 찍기 위한 근거가 되곤 한다. 낙인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은 소통에 있어서 자기 검열의 이유가 될 때가 있다. 감염인으로부터 이른바 힙밍아웃(HIV+커밍아웃)을 들을 때면 비감염인들은 바이러스와 병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질문 자체가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분명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나 이런 사고의 자기 검열은 상대에게 실례를 범하도록 하진 않지만 반대로 소통에 있어서 장애를 낳기도 한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오히려 진지한 대화를 방해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 HIV 감염인의 98%는 성관계로 인해 감염되었다)

 이런 사고의 자기 검열이 심해질 경우, 질병에 관련한 모든 대화를 원천 차단하게 되기도 한다. 약을 어떻게 타오는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떤지,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무엇인지. 비감염인으로서 드는 궁금증들을 묻지 않게 된다.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이, 에이즈를 에이즈라 부르지 못하는 웃기고도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친밀도가 낮을수록 이런 증상은 더 심해진다. 내가 처음 포니님을 만나 이야기했을 때 발현되었던 이상한 증세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고의 자기 검열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소극적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는 다른 자기 검열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일상에서가 아닌 아닌 자의로 감염인을 만났을 때 자주 느껴지는 자기 검열이다. 위에서 말했듯 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커뮤니티 알에 연락을 했고, 이것이 이어져 키씽 에이즈 쌀롱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쌀롱이 끝나고 남은 시간에 나는 한 참가자에게 비감염자임에도 왜 에이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질문을 받고 나서 꽤 깊은 생각에 빠졌다. 특수한 업무 목적이 아니거나, 업무 목적이라 하더라도 자의로 감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왜 이들과 만나려 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그 과정에서 두 가지의 질문을 떠올렸다.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실례가 아닐까?’,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들을 불쌍하다고 여기며 이를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와 비슷한 생각을 장애인권에 대해 공부했던 나의 지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비장애인이면서 왜 장애인권에 대해 연구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스스로에게 ‘나도 모르게 장애인을 ‘삶을 살아가기 힘든 소수자’로 인식하며 동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고 한다.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관심인지 동정인지 헷갈려 하는 일은 HIV 감염인 뿐만이 아닌 다른 소수자들을 만날 때도 일어난다. 나는 이럴 때면 관심과 동정이라는 양 극을 가진 스펙트럼 사이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낀다. 대부분 동정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며 마무리되지만 질문 자체가 주는 파급력은 상당히 크다. 위에서 말한 자기 검열의 경우 보통 서로에 대한 친분이 쌓일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이 동정의 스펙트럼 문제는 시간에 상관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미묘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서 다른 감염인이나 소수자를 편히 대하다가도 행동에 있어서 주춤대게 만들곤 한다.

 커뮤니티 알과 함께하며 나는 두 가지의 자기 검열을 모두 느꼈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많이 나누긴 했지만 진정으로 소통하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뮤니티 알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느낀 건 생각 외로 감염인보다 비감염인들이 더 소통의 벽을 높게 쌓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알의 사람들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있냐고 계속해서 물었다. 직접 만나기 전에는 그들이 이야기하지 않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이야기해달라고 한다니. 포니님의 실례해도 괜찮다는 말은 그런 점에서 당황스럽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에이즈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비감염인과 감염인 사이에는 벽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벽은 의외로 투명한 상태로 존재한다. 내가 감염인들과 만났을 때 나는 그 벽을 느꼈다. 나는 이 글에서 그 벽을 함께 단숨에 부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오히려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벽은 쉽게 무너지기 힘들다. 하지만 그 벽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부수기는 훨씬 용이해진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비감염자라면 에이즈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예상하건대 당신은 내가 느낀 감정을 느끼고 있거나 느꼈지만 인식하지 못한 단계일 것이다. 만약 벽을 인지했다면 이제 부술 단계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계속 만나며 이야기해야 한다. 서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느낀 그대로를 말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꽤 아니 많이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언젠간 그런 솔직한 마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를 나는 나에게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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