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R림: ‘나쵸’와 ‘칠리’의 평범한 사랑이야기

프로젝트 R림-‘나쵸’와 ‘칠리’의 평범한 사랑이야기

“결국 저는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거에요, HIV와 상관없이.”

*R림이 뭔가요?

HIV/AIDS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HIV/AIDS감염인의 존재와 그 인권을, 그리고 삶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낙인에 맞서며 에이즈혐오를 격파하는 구술프로젝트. 세상은 그냥, 쉽게, 하루아침 사이에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지요. HIV감염인인 우리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엄연히 존재하며,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것입니다.

주인공: 나쵸 & 칠리

글 작성 및 편집: 소주

나쵸와 칠리의 평범한 발(신발) 사진

햇살이 유독 뜨거운 날, HIV감염인인 칠리와 함께 칠리의 연인 나쵸를 만났다. 나쵸는 칠리가 HIV감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비감염인 연인이다. 나쵸와 칠리, 이 사랑스러운 커플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행복이 가득 느껴졌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들의 눈빛만 봐도 물씬 느껴졌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예쁜 커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어요.”

나쵸에게 칠리와의 첫 만남에 대해 물었을 때, 나쵸는 칠리의 첫인상을 상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어떤 만남이었길래 충격과 공포라고 말하는 것인지, 긴장하며 듣고 있는 내게 나쵸가 말했다. “듣도 보도 못한 패션에 깜짝 놀랐어요. 충격과 공포였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때 그 옷, 그대로 입고오라고 한 적이 있는데 버렸다고 그러네요, 그런데 믿을 수가 없어요. 어딘가 집에 아직 남아있겠지. (웃음)” 칠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정말 버렸어.” 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황급히 화재를 전환했다. 칠리는 나쵸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푸른 옷을 입고 있었어요.”

첫인상이 조금 독특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평범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남들처럼 데이트를 즐기는. 나는 조심스럽게 칠리가 HIV감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평소에 별로 생각을 하지 않아요.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나쵸는 명확하게, 살짝 갸우뚱하며 선명히 말했다. “평소에 별로 생각이 안나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나쵸는 칠리가 HIV감염인인 것을 잊고 산다고 얘기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딱히 기억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저 가끔씩 여행을 갈 때에 약을 챙겨왔는지 묻는 정도라며 이렇게 얘기했다. “HIV가 중요한 게 아니죠. 결국은 저는 얘(칠리)가 좋은 거니까요.”

“깜짝 놀랐어요. 저도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사실 나쵸도 처음 칠리의 감염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많이 두려웠다고 했다. “많이 울었어요. 너무 슬펐어요. 눈물을 엄청 흘렸죠.” 지금은 칠리가 HIV감염인이라는 것에 대해 잘 생각도 하지 않는 나쵸도 칠리가 HIV감염사실을 말했던 당시 처음에는 엄청 놀랐다고 얘기했다. 칠리가 당장 어떻게 될 것 같고, 칠리가 아파서 병원에 있어야 하는 줄 알고 엄청 울었다고 했다. 곧이어 나쵸가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아 그런가보다’ 했어요.” 칠리가 올바른, 정확한 정보를 알려줘서 별로 신경을 안쓰게 됐다고 얘기했다. 나쵸도 처음에는 HIV에 대해, 걸리면 죽거나 크게 아프게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HIV가 관리가 되며, 관리를 꾸준히 잘하면 전파되지 않는다는 등의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된 이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평균수명도 비감염인과 별반 다르지 않잖아요. (웃음)”

“날 차고 싶으면 차도 돼”

칠리가 나쵸에게 HIV감염사실을 얘기할 때 한 말이라고 한다. “날 차고 싶으면 차도 돼… .” 칠리가 당시를 설명하고 있던 도중 나쵸가 칠리의 얘기를 듣다가 말했다. “그 말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칠리는 그 당시 오랜 망설임 끝에 휴대전화 넘어로, 아무도 없는 넓은 공터에서, 홀로 엉엉 울면서, HIV감염사실을 얘기했다고 했다. “무서웠고… .” 그 당시를 회상하며 칠리는 아주 무서웠다고 얘기했다. 칠리 역시, 아주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나쵸가 울었던 것처럼. 나쵸도 칠리도 모두 슬피 울었던 과거.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나쵸와 칠리 커플은 ‘이제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그렇게 엄청 울었던 그 과거를 회상했다.

“저도 무서웠어요. 처음에는.”

칠리는 나쵸에게 HIV감염사실을 얘기할 때, 잘 못 알아 들을까봐 ‘에이즈’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HIV, 감염인이라고 하면 보통 못 알아 들으니까…” 칠리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스스로. 그리고 나쵸에게 열심히 알려주었다고 했다. HIV가 뭔지, HIV와 AIDS(에이즈)는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관리가 가능한지 등등. 우리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그리고 과거의 우리에게, HIV/AIDS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얘기 나눴다. 나쵸는 HIV/AIDS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이 잘 알 수 있게 정부와 국가가 나서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쵸는 많은 사람들이 무지로 인한 두려움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며 자신도 처음에는 무서웠다고 얘기했다. “저도 무서웠어요.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그런데 (알고 나니까) 지금은 뭐, (웃음)”

“HIV감염인인지 비감염인인지 그게 중요한가?”

우리는 서로 맞장구를 치며 얘기했다. “사랑하는데 HIV감염여부가 중요한가?” 사실 나쵸와 칠리도 과거에는 HIV 감염사실 때문에 헤어짐을 상상했던 커플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얘기한다. HIV가 사랑을 못 할, 혹은 사랑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인 얘기도 나눴다. “사실 (HIV감염사실이) 중요한 게 아닌데, 사랑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 우리 모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HIV감염인들이 연애에 있어서) 거부를 많이 당하니까 중요한 지점으로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지… .”

“몰라서 그래”

살짝 우울해진 대화가 이어질 때 나쵸가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나쵸는 무지로 인한 두려움을 다시 강조했다. 비단 연애, 사랑의 문제 뿐 아니라 이 사회의 혐오와 낙인에 대해서도 나쵸는 ‘무지’ 때문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HIV감염인들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모르면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공부까지가 아니어도, 조금만이라도 더 알아보고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아직도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가 잘 전달되지 않는 이 사회의 현실에 대해, 그리고 왜곡된 정보가 난무하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었다.

“사랑한다는 말… .”

커플을 인터뷰 하는 만큼, 특별히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나쵸는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은 한 가족 같아요. (칠리가) 마음에 이미 스며들어서.. 파내기가 쉽지 않죠.” 칠리는 행복한 표정이 역력했다. 사랑스러운 두 커플의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나는 또 언제가 가장 행복한지 물었다. 나쵸는 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만나서 이러고만(같이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느낌….” 가만히 듣고 있던 칠리도 입을 열었다. “다 좋죠. 마음이 넓어요. 이해심이 많고.” 그리고 잠시 후에 나지막이 덧붙였다. “사랑한다는 말… .(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