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R림: PL과 MSM의 새로운 관계맺기

노콘 항문섹스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PL과 MSM의 새로운 관계맺기

글쓴이: 버섯

0.

2014년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에 발표했던 「외로움의 조건」이라는 글은 도입부의 경험만을 잘라내 “[혐]에이즈에 걸린 게이가 쓴 수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 발표하는 이 글 역시 마찬가지의 오해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어째서 누군가가 ‘문란한’ 섹스를 했다고 하면 마땅히 에이즈에 걸렸으리라, 걸리리라 생각하는 걸까?

나는 2018년 11월부터 프렙 시범사업에 참여해 에이즈 치료제이자 예방약으로 사용되는 트루바다를 복용하고 있다. 프렙 시범사업은 HIV 항원항체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만 참여할 수 있다. 즉, 나는 ‘아직’ 감염인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은 두 가지다. 첫째. 사람들이 가지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합리적이려면 나는 이미 감염인이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아닐까. 둘째, 누군가를 HIV감염인이라 여겨 그를 혐오하고 두려워했을 때, 그가 감염인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는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다만 이번 글의 독자는 MSM으로 한정하려 한다. 게이가 아닌 MSM이라는 용어를 택한 이유는,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MSM 중에서도 노콘섹스를 좋아하는 남성, 그리고 노콘섹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MSM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우리가 타인과 성접촉을 하는 한, 어디에서든 서로 교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나는 노콘섹스를 좋아하고 일대일 관계가 아닌 익명의 사람들과 가지는 그룹섹스, 바텀 한 명에 여러 명의 탑이 섹스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러한 행동을 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건강 상태나 행위에 대해 굳이 묻거나 따지지 않는 관계가 편하다. 나는 내 행동이 나에게 성병 감염의 가능성, 나아가 다른 문제를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 행위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PL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과신하고 있었을까? 그보다는 굳이 HIV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그들의 상태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2.

내가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게이들을 만난 것은 전역한 이후였다. 하지만 커뮤니티로 진입하진 못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엔 돈이 들었고 나는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만원으로 주말을 보내야 할 때,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상대가 부담하고 싶어할 만큼 잘생기거나 잘나지 않은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안 됐다.

ㄱ. 술벙개에 가서 1차 비용을 내고 집에 온다.

ㄴ. 원샷바에 가서 혼자 칵테일 한잔을 마신다.

ㄷ. DVD방 입장료 오천원을 내고 들어가 실컷 섹스한 뒤 나와서 남은 오천원으로 햄버거 세트를 사먹는다.

ㄹ. 밤에 휴게텔 입장료 만원을 내고 들어가 다음날 오전까지 실컷 섹스한다.

ㅁ. 비용이 들지 않는 크루징 장소를 찾아가 모르는 사람들이랑 섹스한다.

ㅂ. 벙개를 잡아서 커피만 마시고 헤어진다.

아마 나에게 다음 단계를 부담할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만나는 사람들도, 만남의 형식도 많이 달랐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최소 비용으로 만족을 추구하려면 휴게텔과 DVD방에 가는 것이 최선이었고 나는 그걸 좋아했다.

3.

이미 구축되어 있는 구성원 간의 친밀함,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외모 자원에 따른 힘의 차이는 나로 하여금 내가 어울리는 곳은 게이 커뮤니티가 아니라 상대방이 누군지 신경쓰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익명의 섹스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하룻밤에도 열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과 노콘 섹스를 하는 내 삶은 커뮤니티 내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계몽하거나 바꿔야 할 행동양식으로 취급되었다. 간혹 DVD방이나 휴게텔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해도 다른 사람들이 둘이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는다면 ‘어플’로 만났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고 휴게텔에 다니는 것을 비밀로 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 섹스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들처럼 여겨지고 있었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보다 정확히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다 섹시하고, 식이 되는 사람이 섹스 이야기를 해야 재미있고 매력적이지 그런 이야기를 식이 안 되고, 자고 싶지 않은 게이가 한다면 그는 그 자체로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4.

나는 콘돔을 언제부터 안 썼을까? 나는 거의 탑을 했었는데(바텀을 할 때에도) 콘돔을 사용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콘돔 없이 바텀 안에 싸는 기분이 더 좋았고, 내 항문에서 새어나와 흘러내리는 정액의 느낌이 좋았다. 굳이 콘돔을 쓴다면 바텀이 센조이를 하지 않았을 때 말고는 없었다. 콘돔을 요구하는 상대와는 애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 상대와 주로 애널을 했다. 이때 노콘을 요구하거나 허락하는 사람과 콘돔을 꼭 착용해야만 삽입을 허락하는 사람은 나에게 차이가 있었다. 내 상대는 주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상 바텀들이었는데 그들은 내가 콘돔을 사용할까 염려하는 듯 나보다 서둘러 노콘으로 자지를 삽입했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노콘으로 섹스를 했기 때문에 성병도 자주 걸렸다. 성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다.

나는 노콘 섹스를 너무나 좋아했고 지난 십여 년간 게이들과 섹스를 하면서 나만큼이나 노콘을 좋아하는 게이들이 적어도 한국에는 삼백만 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없는 사람 취급당한다.) 콘돔 없이 섹스하면서는 똥이 묻을까봐 염려했지 에이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이즈의 위험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십대 시절 나 자신을 이해하려 도서관에서 뒤적였던 동성애자들의 이야기에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빠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아마도 사회 분위기가 지닌 동성 항문성교에 대한 높은 수준의 낙인에서 받은 영향을 포함해서) 나 자신에 대한 낮은 자존감, 불안정한 감정 상태는 HIV 감염 가능성보다 더 우선하는 충동이 있다고 믿게 했다.

노콘을 허락하는 사람은 최소한 콘돔을 고집하는 사람보다 나의 감정 상태와 더 가깝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콘돔을 고집하며 자신에게 발생할 여러 가능성들을 차단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사람은 미래를 계획하거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고 내가 만난 노콘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는 ‘살 만큼 살아서’ 별로 겁나는 것이 없거나 상관없다고 여기는 쪽이었다. 그들이 감염인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최소한 찜방에서 만났던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콘돔을 착용할 것을 나에게 요구했다. 나는 감염되어도 상관없어요, 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그들은 자신이 감염될까봐 염려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통해 내가 감염될까봐 우려했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나는 콘돔 착용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와 달리 이미 자신이 감염인이기에 콘돔 착용을 요구했다는 것도 짐작하게 되었다.

5.

이번 시간에 U=U, PrEP을 비롯해 HIV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할까? 자신이 HIV에 대해 무지하다는 이유로 감염인을 모욕하고 혐오를 선동하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감염인이 누구인지 찾아내고 그들을 욕하고 배척하면 안전해지리라는 착각을 하나본데 그렇게 극성스럽게 감염인을 차별하고 낙인찍을수록 감염 사실을 서로에게 숨기게 되어 결국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된다. 더 나아가 감염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를 마땅하다 여기게 하여 그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해도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없게 만든다. 누군가를 탈락시키고 사회의 안전망 밖으로 밀어내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평생 성접촉 없이 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일대일 관계든 아니든 누구나 감염 가능성에 노출된다. 특히나 일대일 관계는 문란하지 않다, 일대일 벙개는 괜찮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은 일대일이었어도 상대방도 그랬을까? 상대방이 이미 수십 차례 하고 다녔다면 자신도 그와 섹스함으로써 같은 수준의 위험을 공유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와 섹스하든 나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은 감염인을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그가 필요한 치료와 지원을 언제라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짜증나는 것은 자신이 ‘비감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뭐라도 된 듯 PL을 타깃으로 삼고 공격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약성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이해는 전무한 무례하고 무식한 인간들이 쏟아내는 공격과 비과학적인 막말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사라지는 것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기게 된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비감염인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은 2018년 동인천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서 행진 행렬을 가로막고 몇 시간째 바닥에 앉아 통성기도하며 혐오발언을 쏟아내던 개독 세력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극적인 변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인권감수성과 발전한 과학적 사실 앞에 무지에서 비롯한 혐오를 전시하는 이들은 빠르게 도태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을 위해 너그럽게 충고하자면 지금이라도 U=U가 무엇인지 HIV가 무엇인지 공부해야 할 것이다.

6.

HIV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PL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그는 약을 먹지도 않았고 병원에 다니지도 않았다. 그는 에이즈에 대한 높은 수준의 낙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미래를 계획할 의지를 빼앗았으며 함부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고 알게 된 에이즈는 그렇게 살아갈 필요가 없는 질병이었다. HIV에 감염되었어도 치료받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타인에게 전파할 우려도 없이 비감염인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HIV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부정확한 편견으로 지레 삶을 포기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오해와 편견은 사회 전반에 퍼져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결합해 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하며 이를 개선할 긍정적인 분노를 끌어낼 수 없게 만든다(상대방이 PL이고 아니고가 중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상 살아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무례하고 어리석게는… 살고 싶지 않다.).

나는 HIV 페티시라고 생각할 정도로 PL이 좋고 PL과 섹스하고 싶고 PL의 정액을 먹고 싶어하고 PL의 안에 노콘으로 싸거나 노콘으로 받고 싶어하는데 왜 그럴까? 비감염인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꼬워서 그렇다. 뭐가 잘나서? 몸에 HIV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할 때 그가 몸에 HIV를 가지고 있다 아니다 보다 더 짜증나는 문제는 존재한다.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사랑하지 않게 되는 계기는 더욱 복잡하다. 그렇게 마음이 변하는 핑계를 상대방이 감염인이어서라고 쉽사리 떠넘길 수 있다면, 과연 그 감정이 사랑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PL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한계와 조건들을 결정한다고 믿게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좀더 살아보면, 인간이라면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와 충동을 몇 가지쯤은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안고서 뒤뚱거리며 살아가는 법임을 깨닫게 되지 않는가.

7.

노콘섹스와 다수의 사람들과의 성접촉을 선호하는 내가 십여 년간 이 바닥에서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노콘섹스에 대한 욕망이 있는, 안전하지 않은 섹스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렙이나 U=U가 퍼지기 전에도 그랬다. 에이즈가 불치의 질병이고 죽음의 병이라는 인식이 있을 때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일까? 누군가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왜일까?

그것은 단순히 노콘에 대한 선호만으로 설명하긴 힘들 것이다. 나는 문제에 다가가는 열쇠로 게이들이 처한 조건과 상황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섹스를 서로가 원하는 매력을 교환하는 거래관계로 만드는 어플 문화, 거기에서 자원이 부족한 사람이 섹스를 성사시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조건들엔 무엇이 있을까? 노콘을 허락하는 사람과 콘돔을 고집하는 사람 사이에 있는 힘의 격차. 나이가 많아서, 돈이 없어서, 관계 맺는 문법을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성정체성과 항문성교를 불법화하여 낙인찍는 국가와 그것이 재생산해내는 사회의 차별과 억압이 주는 스트레스.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로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불안과 언론과 혐오세력들로부터 끊임없이 불려나가 모욕당해야 하는 불쾌감들이 표출되는 한 방식이라는 생각 등 복잡한 조건들이 서로 얽혀 있다.

성에 대해 쉬쉬하는 태도는 질병을 질병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도덕적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취급하게 만든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윤리와 도덕이 개입해 특정 질병을 그릇된 행동의 결과로, 일탈 행위의 마땅한 벌로 여기게끔 만든다. 어떤 행동이나 존재방식은 그릇된 것,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금지당한다. HIV 감염 및 성병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방법들을 배우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는 대신 무조건적인 금지를 통해 정체성과 성행동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든다. 어리석은 일이다. 어떠한 욕구도 그것을 단숨에 끊어내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 이 사람이 이러한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기 인식은 어떤지, 자신이 반복하는 행동과 상황에서 위험한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삶을 기획하기 위해선 어떤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지 이해가 필요하다.

8.

하지만 위의 조건들을 배제하고 순전히 흥분과 만족감 때문에 노콘섹스를 택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내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나는 콘돔을 사용한 섹스가 싫다. 나는 노콘섹스가 좋다. 나는 노콘섹스를 통해 감염될 수 있는 성병의 종류와 위험과 그 대처법을 숙지하고 있으며 상대방 역시 그러길 바란다. 그렇다면 행복한 노콘섹스를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이다.

ㄱ.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으며 꾸준히 치료제를 복용해 바이러스가 억제된 상태의 감염인과 한다.

ㄴ. 프렙을 복용한다.

ㄷ. 감염인 인권을 증진시켜 그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모두가 행복하게 노콘섹스할 수 있게 일조한다.

ㄹ. 의학적 사실에 반하고 구시대적이며 예방에 도움 안 되는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을 없애고 게이 커뮤니티에 프렙 접근성을 높이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

현재 프렙은 시범사업으로 1년간 무상으로 약제와 검사비용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프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C형 간염을 비롯해 다른 성병을 예방해주지 못하지만 HIV 노출에 있어서는 복약법을 지키면 감염 가능성에서 안전하다.

서로 원한다면 부카케를 해도 되고, 노콘섹스를 해도 된다. 그것이 폭력이 아닌 서로 합의한 관계라면 말이다. 질병에 대해 불필요한 편견과 판단을 더할 필요가 없다. 즐거운 노콘섹스를 하자.

*이 글은 제11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안에 싸도 돼요?’ 세션 발제문입니다.

*많은 사유가 가능한 이 글을 보다 많이 공유하기 위하여 프로젝트 R림의 2019년 첫 게시글로 정하였습니다.

*글 게시를 허락해주신 버섯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