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헌법재판소 전파매개행위죄 공개변론 방청을 다녀와서

11/10 헌법재판소 전파매개행위죄 공개변론 방청을 다녀와서

작성: 토마스

위헌심판 제청 후 약 3년 만에 이뤄지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 등 위헌제청’(사건번호 2019헌가30)에 관한 공개변론을 다녀온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 공개변론이 이뤄졌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이유는, 헌법재판소에 접수되는 많은 사안에 대해 기각 또는 각하 판정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안 자체가 공개적으로 논의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온라인으로 방청을 응모해봤지만, 아쉽게도 여기서는 추첨이 되지 않아서 선착순으로 배부하는 오프라인 방청권을 받기 위해 오전 일과를 마무리한 후 급하게 안국역으로 가 마지막 방청권을 받을 수 있었다.

공개변론을 방청한 뒤 느낀 것은,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누군가는 쉽게 받아들이거나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나와 세상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다르게는 내가 이제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많이 받아들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감염인 당사자로서 이러한 논의를 계속해서 지켜보며, 요건이 명확하지 않고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는 해당 조항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판단할 것도 없이 명확하다고 생각했지만 재판관들은 HIV의 역학적 특성과 진단 및 치료 방법의 양상까지도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방청석에 있는 내가 그러한 모든 질문에 대해 상세하게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방청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세 시간 남짓한 공개변론을 그저 지켜만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방청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아 좀이 쑤시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피곤하게 만든 것은 심판 대상 조항이 공중보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전혀 효과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항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하며,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과 근거를 되풀이하는 이해관계인(질병관리청장) 대리인과 HIV 감염인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인 질병관리청이 낙인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는 심판 대상 조항의 합헌성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순이었다. 정작 치료를 잘 받고 있는 우리는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러한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며 왜 이러한 문제제기가 이제서야 이뤄지는지에 대한 이해되지 않음이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재판관들은 꼼꼼히 사건을 검토하는 것 같았고, 이 사건을 이끌고 있는 주심 재판관이 면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충분히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참고인으로 등장한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의 진술도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소중한 말씀이었다(헌법재판소 공개변론 영상은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공개되므로 시간이 나는 분들께서는 한 번쯤 보시기를 권유한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몇몇 부분만 보는 것이 지루함을 막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참고인, 그러니까 이 조항이 위헌적이지 않음을 주장하는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HIV’를 “에이치아이브이”라 읽지 못하고 “히브”라 읽었는데, 재판관이 참고인에게 질문을 할 때 “에이치아이브이”라고 몇 번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술을 모두 마칠 때까지 대단히 일관되고 꼿꼿하게 “히브”라 부르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그 정도의 뚝심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HIV를 HIV라 부르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조금씩 졸리던 나의 잠을 깨워준 흥미로운 요소였다.

방청한 공개변론만으로 이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어떠할지를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서두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공개변론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제19조는 위헌적이며 이 법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이번 사건 공개변론을 통해 양측의 의견을 들은 후 더 확신을 가지게 된 생각이다. 이 법이 우리 HIV 감염인에게 발휘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어떠한 결론과 후속 논의가 이어지는지 함께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헌법재판소 전파매개행위죄 공개변론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