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초국적 제약회사의 자본을 거부하는 힘에 프라이드와 미래가 있다 – “‘세금도둑’이 말해보겠습니다”

[논평] 초국적 제약회사의 자본을 거부하는 힘에 프라이드와 미래가 있다 – “‘세금도둑’이 말해보겠습니다”

성소수자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인 스톤월 항쟁이 유래가 되는 자긍심의 달(프라이드 먼스; Pride Month)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자긍심인가 질문하며, 다시금 초국적 제약회사들의 퀴어친화적 행보와 ‘기부’를 경계한다. 

우리는 2022년, ‘초국적 제약회사의 후원을 퀴어커뮤니티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라는 이름의 공동입장 발표로 초국적 제약회사가 건네는 돈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2023년에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이하 길리어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으로 핑크워싱에 대한 항의행동을 가졌다. 그리고 재작년작년 모두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에서 초국적 제약회사의 핑크워싱 문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현수막 행동을 진행했다. 우리는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구성단체로서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면담을 가지고, 그 외에도 초국적 제약회사가 건네는 돈을 수령하는 일부 단체에 문제제기하는 과정을 별도로 가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지속적으로 퀴어/HIV감염인 커뮤니티에 돈이나 물품을 건네왔다. 어떤 때는 제약회사의 이름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는 형태였고, 어떤 때에는 보도자료를 내 기사까지 만들면서 홍보하는 형태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에이즈 인권운동이 끊임없이 공부와 행동으로 초국적 제약자본에 대해 경계를 멈추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작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초국적 제약회사가 서울퀴어문화축제 파트너십으로 참여하는 단위로서 부스와 행진 차량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약 일주일 전에 확인됐다. 

HIV/AIDS인권행동 알이 HIV/AIDS 감염인 단체로서 참여한 최초의 퀴어문화축제는 약 10년 전 신촌에서 개최된 서울퀴어문화축제다. 에이즈를 주제로, 당사자성을 가지고 부스를 운영하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기에 뜨거운 논쟁이 필요했지만 결국 그때부터 서울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퀴어문화축제에도 당당하게 참여하게 되었다. 에이즈 낙인과 성소수자 혐오가 아주 긴밀이 연결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50여년 전 시작된 저항의 역사로 만들어진  ‘프라이드’라는 이름으로 HIV/AIDS 인권을 말하고 싶었고, 성소수자이자 HIV감염인인 다양한 당사자들의 가로지르는 교차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HIV감염인 회원, 당사자들이 우리의 부스를 통해 안도감과 자긍심을 느꼈고, 수많은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이 HIV/AIDS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퀴어문화축제는 우리에게 저항의 역사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투쟁의 현장이자, 서로를 만나며 우리가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축제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그 안도감과 자긍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길리어드와 GSK를 비롯한 초국적 제약회사는 HIV감염인, 성소수자가 혐오세력에게 공격받는 소위 ‘세금도둑’의 진짜 범인이다. 사실 세금적 성격인 건강보험재정은 공공의료에 쓰여야 하는데, 초국적 제약회사가 높은 약가를 통해 폭리를 취해 특허의약품 지출부담을 가중시켜왔기 때문이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특허 독점과 탐욕적인 이윤 추구로 인한 HIV/AIDS 치료제와 프렙의 높은 약가는 HIV감염인과 성소수자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세금도둑’이라는 꼬리표가 붙도록 만든다. HIV감염인이 훔쳐간 것이 그 무엇도 없는 데도. 보수개신교 성소수자 혐오차별선동세력의 ‘세금도둑’ 프레임이 현장 밖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면서도, 진짜 범인이 축제에서 당당히 부스를 운영하고 행진 차량까지 이끄는 모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백, 수십 조에 달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윤추구가 우리 사회의 의료공공성, 인간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핵심적 걸림돌인 상황에서 우리의 자긍심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발화되어야 할까. 우리의 프라이드는 HIV 치료제 등 의약품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건강권을 말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 인간이 건강할 권리를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에 저항하고 싸우는 곳에, 우리의 프라이드가 있어야 한다. 불평등과 건강권 위협에 맞서는 투쟁의 현장에, 우리의 프라이드가 있다. 

때문에 올해도 HIV/AIDS인권행동 알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카드뉴스 발표에 동참한다.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이끄는 차량에 초국적 제약회사가 있지만, HIV감염인과 성소수자의 건강권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에 참여한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핑크워싱을 규탄하는 힘이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행동하겠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초국적 제약회사의 자본을 거부하는 힘에 프라이드와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2024.05.26
HIV/AIDS인권행동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