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한국 성노동자의 날 : 서로의 곁이 볕이 될 때> 연대발언문
소리 (HIV/AIDS인권행동 알)
안녕하세요. HIV/AIDS인권행동 알의 소리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에 HIV 감염인으로서 연대발언으로 함께하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저는 2011년부터 15년째 HIV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짧지 않은 15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것들이 변화해왔습니다. 제가 말한 변화는 법·제도적인 부분이 아닌 커뮤니티의 모습인데요. HIV 감염한 직후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안 좋은 방향으로 변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시만해도 HIV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찾기 어려웠고, 저 조차도 교육등을 통해 접했던 HIV/AIDS의 이미지 또한 죽음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앞으로의 삶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덩이 속에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을 받은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012년 여름, 알에서 운영하는 HIV 감염인 커뮤니티 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비가 오던 날, 신촌에 위치한 모 대학의 학생회실에 제 또래의 동료 감염인들이 20명정도 모였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색으로 비유하자면 회색빛에 가까운 모습이었어요. 죄인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서로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외부에 노출될까 두려워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모임을 진행했음에도, HIV의 H나 AIDS의 A자가 조금이라도 언급되면 다들 사색이 되어 말을 꺼낸 사람에게 ‘말 조심하라’며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알에서 감염인 동료들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저도 이 메시지를 접하고 어두웠던 제 미래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서로의 곁을 인식하고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죄의식 해방의 경험은 개인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엔 충분하니까요. 이러한 내적 낙인의 해소는 알의 가장 주요 목표였습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통했던 걸까요? 그날 게이 커뮤니티의 시선을 피해 신촌과 홍대를 전전긍긍하며 진행했던 모임은 현재 종로로 돌아와 끼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게 됐고, 시간에 맞춰 약을 꺼내 먹고 서로를 챙기는 등. 두려움의 먹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커뮤니티의 변화와는 다르게 사회의 변화는 더딘 것 같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는 감염병 전파에 대해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감염병을 가진 사람이 가해자로서, 감염하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로서 양분화하는 구도를 만들어 가해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감염병을 예방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가해-피해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질병과 질병을 가진 사람에 대한 혐오와 낙인을 너무나도 쉽게 재생산하는 환경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성매개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문란하고, 더럽다는 성적 낙인까지 함께하게 됩니다. 이런 성, 감염병에 있어 가해-피해의 구도로 인한 범죄화, 그리고 성적 낙인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안됩니다. 질병과 집단을 범죄화하는 사회 아래에서는 그 무엇도 예방할 수 없고 보호할 수 없습니다. 처벌은 집단과 예방의 주체를 음지화하거나 행동을 소극적이게 만듭니다.
이는 성노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노동을 범죄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성노동자는 성매개 감염병의 매개체로 인식됩니다. 이는 법률로 성노동자에게 HIV 강제검진을 실시하는 것만 보더라도 국가가 성노동자를 감염병 확산의 원인으로 확정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의 범죄화와 감염병의 원인으로써 집단을 통제하는 방식은 성노동자의 성건강과 그 권리를 축소시켜 HIV 예방을 이룰 수 없게 만듭니다. 범죄로 구분되는 성노동은 성노동자로 하여금 관계 속 약자의 위치로 만들 수 밖에 없고, 이는 콘돔 사용 등에 있어 자발적인 예방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자발적인 HIV 검사와 노동 제한은 성노동이 생업인 사람들이 HIV 감염했을 때 검사와 치료를 기피하게 만들고 음지화하게 만듭니다. 이는 단순하게 추측이 아니라 실제 성노동을 비범죄화한 국가에 비해, 성노동을 범죄화한 국가에서 성노동자의 HIV 감염이 7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된 사실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주도하는 집단의 범죄화와 통제는 멈춰야합니다.
우리는 혐오가 일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벽장 밖으로 한 발을 내딛기 어려울 것입니다. 비범죄화는 많은 권리를 보장하고, 약자로 밀려난 삶이 비로소 스스로에게 돌아올 수 있는 큰 변화입니다. 성노동 또한 비범죄화 되어 성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삶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합니다.
범죄화가 비범죄화로 바뀌는 사회,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 차별이 금지된 사회야말로 우리가 벽장밖으로 나와 서로의 진정한 평안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그러한 사회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저는 이자리에서 여러분들께 과거 감염인 커뮤니티에 전달했던 메시지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치열한 삶은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함께 평안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알도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곁에서 빛이 되어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