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R림: 알 도약이벤트 행사스케치 회동

알의 도약을 위한, 한 발자국의, ‘회동(會同)’.

글쓴이: 사월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이하 커뮤니티 알)은 청소년·청년 HIV/AIDS감염인들의 인권을 고민하며 활동하는자조모임이자 인권단체이다. 2011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국제에이즈학술대회(ICAAP10)에서 HIV/AIDS감염인의 척박한 인권현실을 경험한 청소년·청년 활동가들이 오랜 고민 끝에, 2012년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에 맞춰발족하였다알의 주된 설립목적은 청소년·청년 HIV/AIDS감염인의 네트워킹과 인권증진이다올해로 여섯 돌을 맞이한 커뮤니티 알은 기존의 활동들에 더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집중사업으로 하여 청소년·청년 HIV/AIDS감염인의 인권을 보다 더 크게 외치며 에이즈혐오에 정면으로 맞서려 한다.
 
“축하와 지지의 온기가 가득한”
이태원 언덕에 위치한 카페 더 링크에 여럿이 모였다. 커뮤니티 알의 도약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비단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알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지지하는 온기 역시, 도란도란 모여,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 출발”
커뮤니티 알은, 가려지고 가라앉았던 HIV/AIDS감염인의 목소리를 세상에 보다 더 깊고 넓게 알리며 소통하기 위한, 출발선상 앞에 서있다. 이전까지는 청소년·청년 HIV/AIDS감염인 간의 네트워킹 사업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HIV/AIDS감염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활동도 놓치지 않고 힘차게 해나갈 계획이다. 출발을 알리는 도약이벤트 당일, 현장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전하려한다.
 



“첫 만남을 되돌아보며”
장애여성공감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타리의 진행으로 소주, 소리, 상훈이 나와 알 지기들의 토크쇼가 시작됐다. 지기들에게 향한 첫 질문은 ‘어쩌다 알에 오게 되었는지’였다. 즉 알과의 첫 만남에 대한 질문이었다. 알의 지기이자 상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주는
 
“2011년 아이캅에서 청소년소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며 복지부장관의 위선적인 모습과 경찰의 폭력적인 모습을 봤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그 날 상훈이형이 많이 울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눈물을 왈칵 쏟아냈어요다들 참 많이 울었던 날이었는데 그 눈물방울들이 (HIV감염여부다양한 정체성에 관계없이다 똑같아 보였어요많은 이들이우리가 흘리는 그 눈물방울들을 보며 단체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라며 알의 시작을 고민하게 된 순간을 설명했다. 소리는
 
저는 인권과 아예 관계가 없던 사람이었어요알의 초기 지기들 중에 제 친구가 자조모임 겸 인권단체가 생길 거라고 이야기해줬는데요그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게 편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입했죠처음에는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두렵기도 했는데… 어쩌다보니 회원에서 지기까지 되었어요.”
 
라며 알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삶을 돌아보며 인권을 마주한 이야기를 전했다. 상훈은
 
집안에서 반대가 많았어요긴 침체기가 있었고 아이캅 이후 알 활동마저 못하면 나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시작하고 나서도 계속 고민을 했죠. ‘인권활동을 계속 해야 하나?’ 아니면 어느 정도 추슬러졌으니 그만둬야하나?’ 이런 고민 중에 소주가 꼬드겨서 하게 된 거예요.(웃음처음엔 대여섯 명이 모여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차츰 사람이 없어지더니 소주랑 저 둘 뿐인 상황도 있었어요.”
 
라며 주저했던 이전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알의 기초를 다진 시간들을 들려주었다.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가 엮어지며”
내 삶에 알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까지의 과정, 그래서 알이 첫 발을 떼기까지의 과정, 알이 6번의 봄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들 속 그이들의 눈물과 웃음이 그려졌다. 너무 속상해 울기만 하지는 않았을 터, 이들의 웃음이 궁금해지려는 찰나 사회자가 질문을 던졌다. ‘도약이벤트를 열 때까지의 시간들 중 행복을 떠올리면 뭐가 생각나요?’ 행복을 묻는 질문에 상훈은 2014년도 퀴어문화축제의 현장을 말했다.
 
제가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기까지 꼬박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대중들에게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2014년도 행성인 HIV/AIDS인권팀과 함께 부스를 운영했어요그때가 세상으로 나가는 가장 큰 발걸음이 아니었나 싶어요.”
 
라고 이야기했다. 소리는 알의 회원이 된 후 처음 참여했던 인권캠프를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저녁에는 술을 많이 먹어서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웃음)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너 오늘 화장품 뭐 가지고 왔니꺼내봐라이거 좋니애인은 어떠니’ 하는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HIV/AIDS 감염인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사람들끼리 모였지만감염인임을 떠나서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우리의 공감대가 HIV/AIDS 감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래서 좋았고 행복했어요.”
 
행복했던 순간을 ‘만남’이라고 적은 소주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누군가가 나와 만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서로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서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게 만드는 사회그래서 만나는 매 순간마다 행복하고 고마워요.”
 
라고 이야기했다. 알에 문을 두드리기까지 각각의 사연들은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인연을 이어감에 고마움을 느끼고, 만남의 순간을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지기들이었다. 비단 지기들만의 고마움과 행복은 아닐 것이다. 알에 소속된 모든 회원들 또한 서로가 함께 할 수 있고 일상의 사소함을 나눌 수 있음에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들의 만남이, 사소한 일상이 더 많이 이야기되기를 바라는 순간이었다.
 



“비/감염인의 간극을 넓혀가는 사회를 향해 균열을 내는 시작이 되기를”
비성소수자가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것, 인권단체와 피해/생존자 자조모임과의 만남이 활발해지며 경계가 없어질 때 점차 운동이 확장되는 것처럼, 감염인 커뮤니티 내 비감염인의 존재와 만남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자 타리는
 
“(어떤 사람들은소주는 감염인일까 비감염인일까 궁금했을 텐데굳이 묻지 않고 당사자로서 무언가를 하는 동료가 된 것 같아요이 이야기를 꺼낸다면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는데요. HIV/AIDS 감염인 당사자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나와 계신 지기들은 어떤 면에서 이 운동의 당사자인지 듣고 싶어요.“
 
라며 지기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에 소주는
 
그동안 제가 취한 방식은 제가 감염인인지 비감염인인지 이야기하지 말자누군가 묻는다 하더라도 그게 왜 중요한가 하면서요내가 알과 함께함이 중요하지 감염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HIV/AIDS 감염인 이슈는 저의 의제예요.”
 
라며 이전의 고민을 넘어 당사자로 정체화 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주었다. 더불어
 
그런데 고민이 없지는 않아요알 회원분들 중 가끔 저에게 고맙다고 표현하시는 분도 계셔요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백번 이해하고 어떤 말인지 알지만어쩔 때는 마치 너는 감염인도 아닌데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고맙다는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당신과 나의 다름이내가 비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언어화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언젠가는 고맙다는 말 보다 더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웃음)”
 
소주의 이야기가 끝나자 함께 모인 이들 간에 HIV/AIDS 운동 당사자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고민을 이어받아 소리가 답했다.
 
저는 (.)’이라고 적었어요감염인과 비감염인이라고 칭하는 명칭 자체가 구분 지으려하는 거잖아요현 상태를 구분하는 것이죠그런데 비감염인에게 당신은 앞으로 감염인이 되지 않아요.’ 이렇게 말 할 수는 없잖아요어쨌든 스스로가 문제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외치고사회적으로 풀어내려 하는 사람이 당사자이지 않을까 싶어요.”
 
라고 전했다. 또한
 
“HIV/AIDS감염인 인권증진활동을 비감염인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물론 HIV/AIDS 감염인에게 비감염인이 두려운 대상일 수는 있겠죠감염시킬 수 있는 대상이라서 그렇고, ‘그이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와 같은 것들이 있을 수도 있어서 그래요그런데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감염인만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당사자가 될 수 있는 건 비/감염인 모두에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그래서 점(.)이라고 적었어요그 두 점이 만나서 역사에 획을 그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그것의 핵심은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소리의 명량하고 선명한 대답에 플로어에 박수갈채가 넘쳤다. 당사자란 누구인가, 연대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깊이와 넓이는 앞으로도 깊어져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고민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만남은 HIV/AIDS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구분을 공고히 해나가는 차별의 벽을 향해 균열을 내고 있었다.
 



“변화의 흐름을 마주하며”
고민을 확장해나가며 알 내에서, 혹은 알을 만나고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건네졌다. 소주는 ‘노출’과 ‘드러냄’을 적으며 ‘알을 만들었던 초기에는 오늘과 같은 행사가 가능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음’을 고백했다. 또한 최근 들어 점차 회원들의 발걸음이 확장되어가고 있음이, 그러한 용기가 알 내에 흘러가고 있음이 큰 변화라고 짚었다. 또한 소리는 ‘나(본인)’라고 답했다.
 
저 때문에 크게 변화했다는 게 아니라 제가 많이 변한 거 같아요제가 알을 통해 변화했고알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고알을 변화시키기 위해 교육도 받고 있어요그리고 오늘 같은 자리에서 당사자임을 드러내는 것그것이 가장 큰 변화 아닐까요?”
 
라며 답했다. 마지막으로 상훈은 ‘나이의 변화’에 대해 답했다. 알은 초기부터 10·20대가 가입할 수 있으며,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30대가 이 커뮤니티에 있어도 되는 걸까?’ 고민했으나 비청소년이 청소년 인권운동에 함께 하는 것처럼, 30대에도 청소년·청년 HIV/AIDS감염인 인권증진 사업에 함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생각이 변했다고 답했다.



“알, 도약을 위해 회동하다!”
여섯 돌을 맞이한 알에게 크고 작은 변화가 있듯이 그 시간을 함께해온 지기들도 변화하고 있었다. 물론 알의 발족이후 즐거운 변화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 내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하여 HIV/AIDS 감염인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거세지고 있다. 촛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오히려 촛불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다.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마주한 알은 그에 굴하지 않고 도약을 선언했다. 앞으로 알은 여성 감염인의 네트워킹을 쫀쫀하게 만들어 내고, 감염인의 일상을 드러내는 구술 작업 등을 해나갈 계획이다. HIV/AIDS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한국 사회에 더 넓고 깊게 던져지기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가닿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회동(會同)은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는 일, 혹은 일정한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늘 알의 도약을 위해 ‘회동’한 이들, 혹은 멀리서 알을 응원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은 앞으로 알의 활동에 큰 뿌리가 될 것이다. 알의 뿌리가 땅 속 깊은 곳으로 뻗어나가기를, 혐오와 차별조차 깊은 뿌리의 힘으로 이겨내기를 바란다. 앞으로 알을 통해 곁에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그이들의 존재가, 목소리가, 삶이, ‘오롯이’ 이야기되고 만나지기를 소망해본다. 출발선상 앞에 놓여있던 발을 떼어본다. 도약은 이미 시작됐다. 함께 한 모든 이들과 오래오래 숨 고르며 달려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