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R림: 밤하늘과 맥주를 좋아하는 ‘몰로’의 이야기

프로젝트 R림-밤하늘과 맥주를 좋아하는 ‘몰로’의 이야기

“어쩌라고! 난 여기 있는데!”

*R림이 뭔가요?
HIV/AIDS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HIV/AIDS감염인의 존재와 그 인권을, 그리고 삶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낙인에 맞서며 에이즈혐오를 격파하는 구술프로젝트. 세상은 그냥, 쉽게, 하루아침 사이에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지요. HIV감염인인 우리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엄연히 존재하며,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것입니다.

주인공: 몰로
글 작성 및 편집: 소주

이야기 나눈 후 함께 마신 맥주(feat. Red Ribbon with Rainbow, made by R)

“어쩌라고! 난 여기 있는데!”
 
몰로는 사회적인 혐오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혐오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혐오에 맞설 수 있는 그 힘의 근원을 물어보니, 자신의 존재를 강조했다. 몰로는 아무리 사람들이 혐오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재차 강조하는 몰로의 말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몰로의 말이 맞다. 어쩌라는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존재하는데.
 
하지만 몰로가 처음부터 이렇게 강하고 의연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전 와르르 무너졌어요.”
 
HIV/AIDS는 이제 만성질환으로서 관리가 가능한 질병으로 설명된다. 사람들은 다른 만성질환, 가령 당뇨나 고혈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HIV감염사실을 알게 되면 무너지기 십상이다. 왜 HIV를 알게 되었을 때는 유독 무너지게 될까 이야기 나눴다. 몰로는 처음 HIV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삶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했다. 당시 HIV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고, 사회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그렇게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몰로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들 때문에 삶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앞으로 뭘 하며 살까?’ 기쁜 생각을 하고 있던 몰로였는데, HIV감염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앞으로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두려웠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너질까봐. 그래서 몰로는 HIV감염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몰로는 HIV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HIV감염인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쁜 사람인가?”
 
몰로는 술자리에서 들었던 말을 얘기해줬다. 아 에이즈 걸려!’ 농담으로. 그러니까, 장난으로 이런 얘기를 누군가 했다고 한다. 몰로에게 직접적으로 한 얘기도 아니고, 몰로가 HIV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지만, 몰로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나 나쁜 건가?, 나쁜 사람인가?’  우리의 일상에는 이렇게 에이즈혐오가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촘촘히 자리한 에이즈혐오에 상처를 받는다.

“친구가 엉엉 울어줬어요. 오히려 제가 친구를 달래줬죠.”
 
몰로는 당시에 왜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너무 서러워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몰로는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지지자가 있었기에, 몰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안정을 비교적 더 잘 되찾을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몰로는 길바닥에 앉아 운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때에도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가 있었다. 함께 울었다고 했다. 몰로는 서글프게 우는 친구를 오히려 자신이 달래줬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몰로는 친구의 존재가, 지지자의 존재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지지자가 필요하다. 지지자의 존재는 우리의 존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 모든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교육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어요. 한 줄, 한 단어 정도 있었던가?”
 
몰로는 HIV예방과 감염인 인권에 대해 교육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고 얘기했다. 성교육 시간에 성병 예방에 대한 것은 수많은 내용 중에 한 줄 정도였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왜 이 당연한 교육을 받지 못했을까? 우리는 원통하고 답답한 마음을 서로 나눴다. 몰로는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있을 때 이런 걱정을 했다고 했다. 수건을 같이 써도 되나?’, ‘밥을 같이 먹어도 되나?’  알면서도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수건을 같이 써도, 밥을 같이 먹어도, 일상생활을 같이 해도 전혀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확하고 올바른, 필요한 성교육이 부재한 지금의 현실, 꼭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거부당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나온 얘기다. 몰로는 단지 HIV감염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거부당하고 거부당할까봐 사랑을 이어가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들을 얘기했다. 몰로는 연애를 할 때 항상 HIV감염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게 된다고 했다. 거부당하지는 않을까?’  왜 HIV감염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사랑조차 하기가 어려운 걸까. 그런데 인터뷰가 진행된 다음 날, 몰로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됐어요! 헤헤”

행복한 연락이었다. 몰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HIV감염사실을 알렸고, 상대방이 잘 받아들여 결과가 좋다고 했다. 몰로는 지금 너무 행복해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이다. 사랑해서, 사랑받아서 행복해하는.

“HIV감염인이라는 정체성은 저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요.”

몰로는 자신을 단지 HIV감염인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설명하려하지 않았다. 몰로는 HIV감염인이라는 것이 자신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HIV/AIDS에 대해 편견 가득한 편협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리곤 한다. ‘문란한 성생활’, ‘죽음’, ‘고통’, ‘아픔’  이런 부정적 이미지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지 우리는 한참을 얘기했다. 몰로의 말처럼 HIV감염인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저 HIV/AIDS감염인이라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설명할 수 없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몰로의 말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필요하다.

“밤하늘이 너무 예쁜 거에요. 푸르딩딩하게.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몰로에게 언제가 제일 행복한지 물었다. 몰로는 이렇게 답했다. ‘집에 가다가 목이 말라서 편의점에 가, 맥주하나 사가지고 집 앞 조용한 계단에 앉아 밤하늘을 봤는데, 푸른 밤하늘이 너무 예쁜 거에요. 푸르딩딩하게.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혐오 하는 사람들은 알까? 우리가 예쁜 밤하늘에 감동받는, 평범한, 아니 어쩌면 정말 순수한 사람들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