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말 우리가 죽길 바라는가, 우리가 죽어야 당신이 행복하겠는가.

정말 우리가 죽길 바라는가, 우리가 죽어야 당신이 행복하겠는가.
게이커뮤니티 내의 에이즈패닉·혐오 사태에 부쳐,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굳은 각오와 함께,

에이즈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혐오가 횡횡하다. 특히, 보수우익의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에이즈에 대해 악의적인 선동을 하며 표를 구걸하고, 어떻게든 지지받아보려고 발악을 한다. 이렇게 말하며 말이다.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하고 있습니다.(홍준표)”,
“성욕을 자제하지 못해 에이즈에 걸리는 이들에 대한 대책이 없어 우려된다. (인권조례에 의해) 동성애자들의 에이즈 증가와 청소년들의 가치관 형성에 혼란을 초래할 것(김종필)”,
“저도 교회에 가서 동성애를 공부했다. 특히 남성 동성애는 위생상 문제가 많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에이즈 환자 때문에 재정이 엄청 고갈되고 있다.(김문수)”

예전부터 정말 ‘밥 먹듯’ 에이즈혐오는 계속 있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밥 먹듯’ 우리는 상처받아왔다. 분명히 존재하는 우리들을 범죄화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정치인들의 안하무인이 극에 달하고 있다. 어디 정치인들뿐이겠는가. 보수 기독교세력 역시 신의 이름을 빌려 에이즈 혐오에 앞장서 열심이다. 혐오를 일삼는 어느 정치인이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해 ‘교회’에서, 무려 ‘공부’했다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속이 쓰리고 답답해 터질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최근, 더 큰 상처가 우리의 가슴을 깊이 후비고 있다.

“나가 죽어라”
“제발 뒤졌(죽었)으면”
“(감염인이) 누군지 아는데 알려줄게”
“(감염인의) 연락처 아는데 알려줄까?”
“에이즈환자는 섹스하면 안되는거 아니야?”
“에이즈 걸린 년, 그냥 죽었으면”

이 말들은 최근 어떤 게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다. 소름끼치게도, ‘ㅋㅋㅋ’, ‘ㅎㅎㅎ’(웃음을 표현하는 방식), 이런 자음과 함께. HIV와 에이즈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의 감염인에 대한 태도는 앞서 언급한 정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심각하다. 이들은 무려 ‘웃으면서’, 감염인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에이즈혐오는 HIV/AIDS감염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내적 낙인에 빠지게 하고, 사회에서 고립시킨다. 최근에 발표된 ‘20-30대 HIV감염인 인식설문조사(2017)’ 결과에 따르면 감염인의 자살시도율이 비감염인 대중에 비해 약 20배 이상 높다고 한다. 상상이 되는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심각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또 매우 심각한 수치를 보이는 것이 바로 HIV감염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수치만 봐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원인이 다른 데 있겠는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는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혐오’의 표출이 곧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더 이상 혐오에 그저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맞설 것이다. 더 이상 죽음을 고민할 수 없다. 죽을 수 없다. 혐오는 살인이라고, 살인을 멈추라고, 우리는 강력히 얘기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어떤 ‘혀’의 놀림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고민하게 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막아야 한다.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롭게 ‘혐오’하는 이들에게 고한다.

“혐오를 멈춰라.”
“혐오는 살인이다.”
“살인을 멈춰라.”

2018년 6월 21일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