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HIV감염을 이유로 한 수술 거부, 장애 인정 및 차별 행위로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한다.

[공동성명] HIV감염을 이유로 한 수술 거부, 장애 인정 및 차별 행위로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한다.

2022. 10. 30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HIV 감염을 이유로 한 수술 거부’의 권고 결정을 환영한다. 주문 사항은 피진정인에게 향후 유사한 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하는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할 것, 소속 의료인 대상 직무교육을 시행할 것과 경기도지사에게도 경기도 의료인 대상 HIV/AIDS 감염인 차별 예방 교육을 강화할 것을 골자로 한다.

진정의 요지는 이러하다. 피해자는 2020년 근무 중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하고, 사고직후 119 구급대가 출동하여 피해자를 피진정병원에 후송했으나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피진정병원의 차별행위로 접합수술이 늦어져 피해자는 평생 손가락를 굽힐 수 없게 되었다. 진정인은 피진정병원의 차별행위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제32조를 위반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이니 재발 방지를 비롯 동법 43조에 의거 실질적 구제조치(손해배상 책임, 시정명령, 법원의 구제조치)를 요구하였다.

이번 판단의 쟁점은 HIV 감염인인 피해자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인에 해당 여부 및 피진정병원의 수술 거부행위가 동법 제31조 2항의 장애인에 대한 건강권에서의 차별금지 규정 위반행위 여부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의 경우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에 해당하는 손상은 없지만, 10년 이상의 HIV 항바이러스제 복용으로 인한 후유증을 동반하고 있고, 본 사건의 차별행위로 인해 손가락 기능이 상실된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진정병원이 주장하는 수술 거부의 항변은 HIV에 대한 의학적 기준이 아닌 일반적 편견에 기초한 것으로 치료거부에 대한 정당한 이유로 볼 수 없으므로 차별금지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간 HIV 감염을 이유로 한 수술 및 치료, 입원 거부의 차별행위는 의료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되어왔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HIV/AIDS 감염인 의료차별 실태조사에서도 의료기관의 차별 진정사건의 수가 전체 HIV감염인 진정사건 중에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HIV 감염인 의료차별의 다양한 영향력 요인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HIV/AIDS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다수의 진정과 권고에도 해결되지 않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차별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규범적 힘은 현재로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조의 장애인은 국제인권규범에서 정의하는 장애 개념에 근접하게 규정되어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관장하는 주무관청은 국가인권위원회이고, 인권위는 국제인권규범의 국내적 이행을 독려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기구이다. 따라서 인권위는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HIV/AIDS감염인을 비롯한 다수의 법·제도에서 배제되어있는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협소한 장애 개념을 폐기하고,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확장적으로 장애 개념을 규정·적용해야 할 것이다.

한편 유엔은 9월 9일 ‘대한민국 제2·3차 병합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발표했다. 유엔은 한국의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두에 대해 HIV감염장애인(person with disabilities with HIV/AIDS 또는 HIV infected person with disabilities)에 대한 고려를 주문했다. 첫째, 장애 관련 법들을 모두 검토하여 HIV감염장애인을 포함하여 모든 장애를 아우를 수 있는 장애 개념을 채택하고 그들의 욕구와 특성이 인정되도록 보장하라는 것이다. 둘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HIV감염장애인 등이 직면하는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기존의 법률을 개정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모든 형태의 차별을 끝낼 것을 요구하였다. 장애인권리협약의 당사국으로서 HIV감염장애인의 사회보장과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를 위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국제사회가 주문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 정부에게 의료적 기준만을 중심으로 한 장애 개념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듯, 유엔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HIV감염인이 겪는 차별의 문제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대로 된 해석과 적용, 그리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한국 정부에 HIV감염인을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으로 고려하여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라는 의미이며 나아가 인권 관점에서 ‘장애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촉구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결정 역시 HIV감염인 권리보장 운동의 입장에서는 차별을 깨뜨려 나갈 하나의 유용한 무기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장애인 운동 입장에서는 장애인등록제 폐지와 장애 재정의 운동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한 일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제 HIV감염인 운동은 질병의 맥락에서 말하기를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 이야기를 구성함과 동시에 장애를 ‘사회적 장벽에 의한 차별, 배제, 억압’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에 제도적 및 실무적 개선사항을 제안해주어 HIV감염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의료, 재활, 취업, 문화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이들의 완전한 사회참여를 위한 제도 개선에 앞장서줄 것을 기대한다.

2022. 11. 07
함께하는 사람들_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대구경북HIV/AIDS감염인자조모임 해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