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후기] 제15회 성소수자인권포럼 에이즈세션 ‘U=U가 상식인 세계’

제15회 성소수자인권포럼 에이즈세션 ‘U=U가 상식인 세계’ 후기글

작성: 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제 15회 성소수자인권포럼 ‘퀴어/운동/정의’가 2월 17일-18일 이틀 간 시민청에서 열렸습니다. 포럼 둘째날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U=U가 상식인 세계’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감염인들이 꾸준히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 검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고, 그것이 ‘미검출=전파불가’, U=U 캠페인으로 세계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고, HIV/AIDS에 대한 두려움과 성적 낙인이 여전히 있습니다. ‘U=U는 상식인 세계’라는 제목은 시기상조처럼 들리지만, 과거의 편견에 기반한 차별이 작동하는 한국 사회를 의도적으로 낯설게 바라보며 지금을 좀 더 치열하게 살피자는 의도를 갖습니다. 

시기상조의 제목 안에 토론의 주제들 역시 논쟁적인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누군가는 제목은 순한맛인데 토론주제들은 매운맛이라고 하더군요.) ‘약 안 먹고 섹스하는 감염인’, ‘프렙 안 하는 노콘 섹스’, ‘섹스할 때 질병을 고지하지 않을 권리’는 U=U뿐 아니라 HIV사전예방요법인 프렙마저 닿지 않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갑니다. 치료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도 예방의 책임이 전적으로 감염인에게 돌아가는 상황은 섹스의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소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는 U=U 캠페인의 의미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갖는 한계를 짚었습니다. 치료 기술이 발전할지라도 질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두려움은 검사를 받는 것을 꺼리게 만들어 초기감염사실을 놓치기 쉽게 만듭니다. U=U가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의 논리가 되고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지라도 이 캠페인은 ‘건강한 HIV 감염인’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는 U=U가 질병의 비범죄화를 주장하는데 중요한 논리가 되지만,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캠페인 자체가 함정을 갖기 쉬움을 시사합니다. 

이어지는 토론은 발제를 보충하면서 더러는 커뮤니티의 성적 실천을 좇는데 나아가 감염인의 성적 권리를 사회적 이슈들로 확장하고 연결짓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소리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활동가는 무엇이 HIV검사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지, 치료와 예방에 무엇이 문턱으로 작동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뿐 아니라 초국적 제약회사의 높은 약가와 더불어 질병을 범죄화하는 법이 존재하는 국가의 방기는 여전히 치료와 예방의 접근권을 어렵게 만듭니다. 소리 활동가는 감염인의 성적 권리를 부정하는 것에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이미 연루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PL당사자임에도 ‘약 안 먹고 섹스하는 감염인’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안고 가는 용단이 남달랐던 자리였고, 이러한 용단이 개인의 몫으로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운동은 어떤 역할이 필요할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성원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작가는 프렙을 사용하면서 섹스해온 경험을 이야기하며 프렙의 예방효과가 인정되었다 할지라도 질병에 대한 낙인이 지속하는 한 그 자체로 편견이 될 수 있음을, 상대의 편견 어린 질문에 직면하며 자신마저 질병에 대해 거리를 둬야 했던 편치 않았던 경험을 나눠줍니다. 그리고 취약함을 선택하고 안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섹스를 하면서 그것이 갖는 위험 부담 만큼 어떤 책임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지, 근본적으로 이러한 몸들의 관계가 갖춰야 할 배려와 신뢰가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파트너십과 어떻게 경계를 흐리게 되는지 이야기합니다. ‘피스팅이 무엇인가요?’를 묻는 청중의 질문이 어색하지 않은 자리였던 만큼, 성소수자 운동은 커뮤니티 안팎에서 일어나는 섹스의 실천들을 어떻게 접근하고 담론적 근력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향후 과제로 남겨두었던 토론이었습니다. 

타리/나영정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활동가는 섹스에서 고지와 동의를 주제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는 섹스 전후의 협상에서 고지와 동의의 문제는 감염인으로부터 비감염인을 보호하는 명분으로 이해되기 쉽다는 점을 경계하며, 섹스 협상마저 권한을 갖지 못하는 이들, 가령 예방의 주체가 되기 어려운 시스/트랜스 여성 PL과 미등록이주민/난민, 구금시설 수용자 등을 언급하며 무엇이 이들의 협상권을 부정하고 동의의 주체로서 지위를 박탈하는지 묻습니다. 그런 점에 그는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운동에서 감염인에게 부정되다시피 했던 성적 권리와 협상의 주체라는 위상을 강간죄 개정운동에서 ‘동의’를 정의하는 문제에, 동의할 수 있는 주체의 자격의 이슈로 연결시킵니다.  

타리 활동가는 성관계의 회색지대를 법으로 범죄화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지적하며 성매개감염병을 가진 대상으로부터 모든 것을 고지 받고 그 속에서 합의하는 것이 안전한 섹스가 성립한다고 믿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고 주장하며, 더 많은 우연성과 위험 가능성을 누락하기 쉬움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토론자는 성적 욕망이 보편적 취약성을 전제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미지의 상태에 열려있기를 선택하면서 나의 만족은 손상이나 위험과 공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법의 권한으로 손쉽게 넘기기 앞서 욕망의 토대를 인정하며 위험과 손해를 함께 직면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함께 대처해나가며 비용이 발생할 때 함께 감당하고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통념적인 안전을 위해 배제와 위계를 선택하게 되는 논리를 전환하는 제안인 만큼 더 많은 고민과 언어들을 만들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세션은 프렙과 U=U가 담론으로 자리잡으면서 이 논리들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으며 어떤 것들을 누락시켜왔는가를 살펴보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 ‘U=U가 상식인 세계’는 2019년 인권포럼 당시 ‘안에 싸도 돼요?’를 비판적으로 갱신한 자리였습니다. 취약함과 쾌락이 한데 섞인 섹스로부터 우리가 지켜야하는 것은 무엇인지, 눈앞의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우리’의 범주에서 무엇을 누락시키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만의 문제 너머 국가와 사회에 어떤 변화들을 요구할지를 논의하는 자리는 쉽지 않지만, 서로 만나고 접점을 만들며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