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발언] “삶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09.10) 세계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 계획에 성소수자를 포함하라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소주 활동가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서 발언했습니다.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성욱입니다. 
스스로 세상을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발언을 시작하겠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는 30년이 넘는 시간을 채웁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인권운동과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사회문화적 가시화 등의 성취를 이뤄내고 또 서로를 지지하고 지켜주며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버팀목으로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우리만 해내야 하는 것이 사실 아닙니다. 사실은 국가와 정치가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먼저 나서서 아주 큰 책임을 가지고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커뮤니티는 세상을 스스로 먼저 떠난 사람들을 애도하기를 멈출 수 없었지만, 그동안 국가와 우리 사회의 정치는 애도는 커녕, 차별과 혐오 확산에 공조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면과 낙인의 재생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어제는 혐오와 차별 확산에 앞장서는 인물이 무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취임식을 가졌고, 우리 사회의 평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률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평등 대신 보수 혐오선동 세력의 표를 얻기 위해 성소수자와 에이즈 혐오발언을 일삼기 바쁘고, 우리는 아직도 학교와 일터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아주 많이 마주해야만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더 많은 드러냄으로 세상과 만나고 있고, 최근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지난 30년의 성취에 더해, 성소수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법제도적 변화를 강하게 우리나라 정치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결혼 법제화, 군형법 92조의6 폐지, 트랜스젠더 성별인정법 제정,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청소년 성소수자 친화적 교육환경 마련, 성소수자 인구에 대한 통계파악 및 실태조사 진행 등 수많은 과제들과 필요한 변화를 이미 우리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삶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의 제목입니다. 혐오와 차별에 굴하지 않고 이 세상을 꿋꿋이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성소수자들의 삶도 당연히 소중합니다. 성소수자 자살 예방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국가와 정치가 이제는 책임있게 응답하고 자기 역할을 꼭 해야만 합니다. 성소수자 당사자로서의 저를 포함하여 성소수자 커뮤니티에는 멈추지 않는 용기를 건네고,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에는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깨닫길 요구하며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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