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혐오수어 없는 한국수어, 국립국어원에 요구한다

오늘 오전, 국립국어원 앞에서 무지개행동과 한국농인LGBT+는 공동으로 <혐오수어 없는 한국수어, 국립국어원에 요구한다>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한국농인LGBT+는 지난 5월 22일부터 국립국어원에 성소수자 혐오수어 근절과 대안수어 등재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진행했고, 농인성소수자와 연대시민 1,073명,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57곳이 함께하여 오늘 그 명단을 국립국어원에 전달했습니다.

올바른 수어의 사용은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어가 훼손하고 있던 어떤 사람과 집단의 존엄을 되찾는 일입니다.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이자 HIV/AIDS인권행동 알의 활동가 소성욱(소주)은 발언에서 “언어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누구보다도 국립국어원이 가장 잘 알” 것이고, 지금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에 혐오가 있다고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국립국어원은 농인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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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문 전문]

안녕하세요.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이자 HIV/AIDS인권행동 알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성욱입니다. 소주라는 활동명을 사용합니다.

저는 2024년 7월 대법원에서 승소했던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의 원고 당사자이기도 한데요, 그 당시 너도나도 승소의 기쁨으로 활짝 웃고 행복한 마음을 나누고 있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농인LGBT+ 활동가 보석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뉴스 등 농인들이 접하는 매체에서 승소 소식을 전달할 때 혐오수어가 사용되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청인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껏 기뻐할 때, 농인들은 이렇게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접할 때조차 혐오적인 언어를 마주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농인LGBT+의 활동을 더더욱 응원하게 되었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동성애자를 동성연애자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동성애자라고 부르라고 세상에 요구했습니다. 동성애자의 관계와 사랑이 ‘동성연애’라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흐름과 시간은 단지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우리가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지 세상에 다시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동성연애자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냥 동성애자라고 부릅니다.

HIV 감염인을 ‘감염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감염자’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표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HIV/AIDS인권운동은 HIV 감염인 및 에이즈환자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고 주장하기 위해서 ‘감염인’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실행했습니다. HIV/AIDS인권운동은 우리 사회가 HIV 감염인을 떠올릴 때 HIV라는 바이러스와 에이즈 낙인, 공포를 떠올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 사회를 함께 구성하고, 함께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리기를 바랐습니다. 지금은 정부에서도 ‘감염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지금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우리 스스로를 다양하게 정체화하고, 그만큼 다양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합니다.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젠더플루이드, 에이섹슈얼/젠더 등 LGBT 알파벳 4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를 함께 구성합니다. LGBT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체성의 성소수자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시간과 과정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 세상이 잘 몰랐던 우리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고 알려줘서, 내가 나를 어떻게 표현하든, 내가 나를 어떻게 지칭하든,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든, 그게 그저 나라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언어는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변할 수 있는 것이고, 변화가 필요하면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수어에 있는 성소수자 혐오 수어를 이제 바꾸자고 요구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일들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가리키는 말과 언어를 더 정확하게, 올바르게 바꿔 표현하자는 것입니다. 성소수자 혐오수어 대신 대안수어를 사용하자는 것은, 다시 말해 더 정확하고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바꾸자는 것은, 단순한 단어, 표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훼손하던 어떤 사람, 인간, 집단의 존엄성을, 이제는 훼손하지 말자고 하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인 성소수자들에게는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과 언어를 스스로 정하고 제안할 권리가 있고 자격과 힘이 있는 것입니다.

언어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누구보다도 국립국어원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에 혐오가 있다고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국립국어원은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 존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국립국어원은 국가기관으로서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시민들과 단체가 연명해서 함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혐오 없는 한국수어를, 국립국어원에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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